훈련에서는 무리하지 않는다. 대회에서는 조금 무리해도 된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이런 기준을 세우게 된다. 평소에는 다음 훈련을 위해 남겨두던 힘을 대회에서는 써보고 싶다.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워질 것도 예상한다. 그 구간을 견디기 위해 훈련해왔으니까.

물론 대회에서도 멈춰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안다. 기록보다 몸이 먼저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몸 상태 때문에 중도에 그만뒀다는 러너에게 잘한 결정이라고 말해줄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말을 달리는 자신에게도 해줄 수 있을까.

목표 페이스로 달리는 중이라고 생각해보자. 출발 전에는 불안했는데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다. 시계를 확인하니 원하는 기록이 아직 가능하다. 그러다 몸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멈추는 편이 맞겠다는 생각도 따라온다. 하지만 발걸음은 바로 멈추지 않는다. 다음 거리 표지까지만 가보고 다시 판단하자고 한다.

그 짧은 유예에 준비한 시간이 들어온다. 주말마다 길게 달렸고, 약속을 조정했고, 훈련이 잘 안된 날에도 일정을 이어왔다. 오늘 그만두면 그 시간이 아까울 것 같다. 중단한다고 훈련한 시간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달리는 중에는 그렇게 정리하기 어렵다.

기록은 구체적이다. 지금 속도를 유지하면 언제 들어갈지 계산할 수 있다. 멈추면 그 기록을 놓친다는 것도 확실하다. 반면 몸 상태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을 수 있다. 지난 대회에서도 힘든 구간은 있었다. 그때는 지나고 나니 괜찮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것은 아닐까.

지난 심박수 칼럼에서는 시계에 표시된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살펴봤다. 이번에는 그 숫자를 보는 마음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몸이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심박수가 평소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안심하고 싶어질 수 있다. 페이스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도 계속 달릴 이유가 된다. 상태를 확인하려고 본 시계에서, 달려도 된다는 답을 찾고 있지는 않을까.

“욕심을 버리면 된다”는 조언만으로는 이 마음을 설명하기 어렵다. 기록을 줄이고 싶어서 훈련했고, 그 목표를 가지고 출발선에 섰다. 힘들 때 조금 더 버티려는 마음이 여기까지 오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마음을 거두고 중단을 결정해야 한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도 쉽게 되는 일은 아니다.

달리기를 멈추고 걸으면 옆으로 러너들이 지나간다. 조금 전까지 비슷한 속도로 달리던 사람들의 등이 멀어진다. 주로 옆에서는 계속 응원을 보내준다. “힘내세요.” 고마운 말인데 선뜻 고개를 들기가 어려울 수 있다. 저 사람들은 내가 왜 걷는지 모른다. 일일이 설명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괜히 시계를 보거나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게 될 것 같다.

몸 상태를 보고 내린 결정인데도 그 자리에서는 뒤처진 사람이 된 기분이 들 수 있다. 멈추는 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뛰고 싶어진다. 기록이 아까워서일 수도 있고,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더는 보이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누구도 탓하지 않는데 혼자 초라해지는 마음까지 예상하면 중단은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멈추려면 누구에게 설명해도 이해받을 만큼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리는 도중에 그 정도의 확신을 얻기는 어려울 수 있다. 멈춰야겠다는 판단을 하고도 더 확실해질 때까지 결정을 미루게 된다.

멈춘 뒤 몸이 괜찮아지면 후회가 남을 수도 있다. 속도를 낮춰서라도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너무 일찍 포기한 것은 아닐까. 당시의 불안은 옅어지고 놓친 기록은 선명해진다. 다만 나중에 상태가 나아졌다는 사실만으로, 그때 계속 달려도 괜찮았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중단한 날 바로 자신의 결정에 만족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준비한 대회였으니 속상할 수 있고, 한동안 결과가 마음에 남을 수도 있다. 다른 러너에게 잘한 결정이라고 말해줄 수 있었다면, 걷고 있는 자신에게도 그 말을 해줄 여지는 남겨두면 좋겠다.

러너는 목표를 위해 힘든 구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 멈춰야 할 때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계속 달리고, 주로의 응원이 이어지는 자리에서 오늘의 달리기를 끝내는 일. 멈출 수 있는 용기에는 기록을 놓친 아쉬움과 뒤처진 듯한 마음을 감수하는 일도 포함될 것이다.